이명박 당선자의 뿌리를 찾아서

이명박 당선자의 뿌리를 찾아서
제17대 대통령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 아니 이명박 전 현대건설 회장이 당선됐습니다. 최초로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인물이 5년간 한국을 이끌어 가게 됐습니다. 참 많은 변화가 올 것 같습니다.

10년 진보 정권이 다시 새로운 보수 정권으로 교체된 정치적 의미를 떠나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는 ‘이명박’이란 한 개인에 대해 포커스를 맞춰 봤습니다. 굳이 프로이트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의 성장 과정, 가족·인간 관계, 성취의 경험 등이 향후 국정 운영 스타일과 리더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선 직전 이명박 당선자의 고향인 포항 일대에 정치팀 기자를 파견해 친척과 지인들로부터 그의 성장 과정을 취재했습니다. 초·중·고 학적부부터 어린 시절 살던 판자촌 쪽방까지 ‘청소년 이명박’의 자취도 두루 따라가봤습니다. 동시에 경제팀 기자들은 이 당선자의 현대 그룹 재직 시절 지근거리에서 동고동락했던 인사들을 만나 ‘CEO 이명박’의 일하는 스타일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한계는 있었습니다.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한 자신의 친척, 과거 회사 동료에 대해 가능하면 ‘좋은 얘기’만 전해 주려는 인지상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의 모든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큰 틀에서 그의 '개인적 자아'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데는 독자들에게 다소의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명박의 사람들 126인도 간추려 보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드는 데 기여했던 인물, 앞으로 새 정부에서 역할을 할 사람들이 선정의 잣대였습니다.

우선 후보군의 리스트를 망라한 뒤 이명박 당선자의 의중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읽어온 캠프의 핵심 5인에게 한 명 한 명 평가와 엄선을 자문했습니다. 개인마다 연고지·학력·경력은 물론 당선자와의 인연, 그간의 주요 역할 등의 정보를 담았습니다. 또 126인에 대한 통계 작업을 통해 새로운 파워엘리트 그룹으로 등장할 이들의 주요 특성을 찾아 함께 그래픽으로 소개합니다.

내년 2월 출범할 실용정부의 인사 때마다 독자 여러분들이 그 인연과 인맥의 뿌리를 이해하는 참고 자료로 간직됐으면 합니다.

사람의 능력과 잠재력 마지막까지 다 뽑아 쓴다

'대한민국 CEO' 이명박의 리더십

이명박 당선자가 서울시장 시절인 2005년 6월 서울숲 개장식에 참석해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올해 66세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15년간 현대 그룹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기업 마인드를 시정에 도입한 서울시장 4년도 따지고 보면 서울시 CEO였다. 그의 인생 66년 중 19년을 CEO로 산 셈이다. 게다가 24세에 현대에 입사해 CEO가 되기까지 12년을 그는 회사의 CEO처럼 고민하고 행동했다. 그것이 호랑이 같은 오너 정주영 회장의 눈에 들어 고속출세를 한 비결이었다. 대학 졸업 후 대통령에 당선된 지금까지 이 당선자의 40년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CEO다.

이 당선자가 시장이었던 2005년 서울시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시청 전체를 태극기로 뒤덮는 이벤트를 벌여 눈길을 끌었다.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CEO가 있다. 혁신을 강조하는 이도 있고, 창조를 부르짖는 이도 있다. 공통점은 '실천'이다.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은 "CEO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실행능력"이라고 말했다. 모든 CEO는 목표와 비전을 제시한다. 1등 기업, 주가 50% 올리기, 이윤 100% 증대 등이다. CEO들은 그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느냐를 놓고 평가받는다. 미달하면 오너에게 잘리거나 주주들에게 내쫓긴다.

실적을 올려야만 자신도 살고, 기업도 발전하고, 직원들도 살아남는다. '실천'과 '실적'은 모든 CEO의 원초적 스트레스다. 이 때문에 CEO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갖다 쓴다. 그리고 이념과 연고를 떠나 최적의 자원을 찾아다닌다. 명분보다 이익을, 관행보다 효율을 중시한다.

그것이 CEO들의 유전인자(DNA)다. 이 당선자도 이 DNA가 강렬하다. 그 DNA는 '실용주의'로 표출된다. 시계추를 돌려 보자. 서울시장 이명박의 최대 난제는 서울지하철 노조 파업이었다. 공무원들은 "34년간 해봤지만 노조 요구를 들어주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고 보고했다. 노조의 파업 때문이었다. 하루에 670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이 3일만 멈춰서면 서울시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당선자는 '지하철공사 간부'라는 인력자원을 동원했다. 그들에게 기관차 운전을 배우게 했다. "기관차 몰려고 행정고시 쳐 공무원 된 게 아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 당선자는 그들을 설득했다. 시장 취임 후 1년 반, 마침내 지하철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지하철은 차질 없이 운행을 계속했다. 공사 간부들이 운전석에 앉은 것이었다. 결국 노조가 백기를 들었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당선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있는 비서 김윤경씨는 "사람의 능력과 잠재력을 최대한, 마지막 순간까지 다 뽑아 쓴다"고 이 당선자를 표현했다.

이 말에 이 당선자 리더십과 용인술의 본질이 담겨 있다. 그는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명예욕을 자극하거나, 무한 신뢰를 보내는 등 다양한 수단으로 사람의 능력을 뽑아낸다. 그 사람이 그의 반대자라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과거를 불문에 부친다. 5년 전 서울시장 취임식 날, 서울시 고위 간부가 그를 찾아와 '살생부'를 내밀었다. 시장 선거 때 상대편을 도운 명단이었다. 그는 살생부를 뜯어 보지 않고 돌려보냈다. 일부 언론에 명단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보복 인사는 없었다. 소문이 퍼졌고, 살아남은 그의 반대자들은 도리어 더 열심히 일했다.

원세훈 전 서울시 행정부시장은 "출신과 연고를 따지지 않고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을 쓰는 것이 이 당선자의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CEO가 실력을 중시하는 조직에선 경쟁이 불붙는다. 이 당선자는 현대 그룹 회장 시절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적군'인 현대차 노조 편집장의 여동생을 비서로 채용했다. 성적이 최고였기 때문이었다. 여비서는 성심껏 일했고, 결과적으로 현대차의 노사관계도 부드러워졌다.

이 당선자는 실수했다고 해서 사람을 자르지 않는다. "그릇을 씻지 않는 사람보다 씻다가 깨는 사람이 낫다"고 이 당선자는 말해 왔다. 서울 버스체계 개편 초기 그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명박 시장 퇴진 국민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주위에선 교통체계 개편을 주도한 음성직 교통관리실장 경질을 건의했다. 그는 건의를 일축했다. 대신 자신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원 전 부시장은 "일을 시키되 책임을 자신이 지기 때문에 밑에선 일에 몸을 던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의 잠버릇을 보자. 그는 자다가 전화를 받아도 평상시처럼 통화하고 다시 잔다. 현대그룹 CEO 시절 형성된 버릇이다. 해외 현지에서 전화하기 좋은 시간은 한국에선 한밤중이나 새벽이다. 그는 사장이 졸린 내색을 보이면 급한 업무라도 부하 직원이 전화를 걸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해외에서 한국 시간에 맞추면 하루 이틀이 금방 넘어간다.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시간과 자원이 낭비된다. 그는 연습을 거듭했고, 새벽 1~2시에 자다가 전화를 받아도 낮에 전화를 받듯이 또렷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직원들은 아무 때나 이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그는 끝까지 일을 챙긴다. 한나라당 경선을 하루 앞둔 8월 18일,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 동안 캠프 사무실을 지켰다. 그는 전국의 당협위원장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투표를 독려했다. 경쟁자였던 박근혜 전 대표는 그날 기자회견 뒤 일찌감치 캠프를 떠났다.

'끝없는 경쟁'은 이 당선자가 집착하는 조직 관리 방식이다. 그는 대선 기간 중 캠프에 칸막이를 치지 않았다. 경선 때는 후보 홍보물을 한 곳에 맡기지 않았고, 후보 연설문은 많을 땐 네 사람이 썼다.

젊은 실무자들을 중용하는 것도 이 당선자가 조직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법 중 하나다. 서울시장 시절 그는 간부회의 때 과장급 이하 실무자들까지 배석시켰다. 대선 기간에도 국회의원 보좌관들을 늘 회의에 참석시켜 질문을 쏟아냈다. 실무자들은 신을 내 일하고, 간부들은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는 위기감으로 일에 달려들었다.

이 당선자는 자신의 조직에 2인자를 허용하지 않아 왔다. 그것은 이 당선자가 절대적 권한을 지닌 오너 밑에서 오랫동안 독점적 위치의 CEO로 지내오는 과정에서 몸에 밴 것일 수도 있다. 2인자의 존재가 자신에게 정보와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방해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 당선자가 박근혜 전 대표 측과의 갈등 뒤 캠프의 2인자로 불린 이재오 의원을 사퇴시킨 것을 그런 맥락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당선자는 끊임없이 사람을 체크한다. 흔히 이 당선자의 복심(腹心)으로 평가받는 정두언 의원도 정무부시장 시절 이 당선자의 인터폰을 세 번 받았다. "이 인사(人事) 왜 이렇게 했어?" 모두 정 의원이 사전에 보고했던, 인사에 관한 질문이었다. 대선 기간 대통합민주신당의 네거티브 공세가 한창일 때 이 당선자는 클린정치위원회에 방어의 전권을 맡기다시피 했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 대신 실무진을 찾아 물어봤다. 일종의 크로스체크였다.

'CEO 이명박'에겐 냉정하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목표 성취에 골몰하는 리더가 흔히 듣는 얘기다. 이 당선자의 측근과 지인 누구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정두언 의원은 "일을 해내려다 보니 사람 관리를 하지 않아 그렇다"고 분석했다. 곱씹어보면 '내 편'이었다고 챙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전여옥 의원은"그 같은 냉정함이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연고주의를 끊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냉정함이 승자독식(勝者獨食)으로 흐르고 포용력 부재(不在)로 나타날 경우 우군을 돌아서게 하고 적을 양산할 소지도 있다.

이 당선자는 12월 19일 밤 대통령 당선 후 "대한민국 경제를 반드시 살리고, 국민 통합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그가'대한민국 CEO'로서 대한민국 주주인 국민에게 약속한 목표를 어떻게'실천'할지가 주목된다.

자존심 하나로 가난·콤플렉스 넘었다

‘신화의 뒷면’에 감춰진 성장기

포항 동지상고 야간부의 졸업 기념 사진. 흰색 점선 안이 이명박 당선자. 친구 김창대씨 제공
경북 포항의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지금부터 62년 전 겨울 일본 오사카에서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당시 4세)의 가족을 맞았던 겨울 바다는 지금보다 더 추웠을 것이다. 그의 가족이 탄 부산행 귀국선은 대마도 인근에서 침몰했다. 이 당선자의 큰누나 귀선(77)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어머니가 명박이를 살리기 위해 끈으로 꽁꽁 묶어 업고 있었다”며 “그 와중에도 명박이는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이 당선자는 14년간 포항에 살며 초·중·고교를 마쳤다. 가난을 가장 처절하게 경험한 것도 이곳이다. 포항은 이명박을 어떻게 키웠을까.

이명박 당선자가 중학 시절 살던 포항 북구 덕산동 집. 지금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포항=김선하 기자
“덩치가 반에서 중간이나 됐을까요. 그런데 턱 하니 칠판을 둘러메고는….”
이 당선자의 모교인 포항 영흥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동창 박이득(66)씨는 “그 친구, 당찬 구석이 있었다”고 말했다. 6ㆍ25전쟁 중 시내 초등학교는 죄다 군부대에 수용됐다. 인근 해수욕장 소나무 숲이 교실을 대신했다. 칠판 등 수업 용구를 챙길 때면 이명박은 뒤로 빠지는 법이 없었다. 청소 시간에도 그랬다. “빨리빨리 일하고 가자”며 가장 먼저 소매를 걷었다.

박씨는 1965년 이 당선자가 현대건설에 입사한 직후 서울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좋은 회사 들어가 월급 받으니 좋겠다고 했지. 대뜸 ‘이봐, 그 회사 내 거야. 내가 남의 월급이나 받으려고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비참하잖아’라고 하더라고. 어릴 때와 똑같더라니까.”

이명박 당선자의 포항 동지상고 시절 사진. 가장 왼쪽이 이 당선자. 친구 김창대씨 제공
그러나 가난은 소년 이명박을 점점 내성적으로 만들었다. 원래도 넉넉지 못했던 집안은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 근처 목장에서 일했던 아버지 이충우(81년 작고)씨가 전쟁 이후 실직하면서 더 어려워졌다. 이 당선자는 『어머니』란 책을 쓸 정도로 모친 채태원(64년 작고)씨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은 적은 많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당선자 일가의 고향인 포항 북구 흥해읍 덕성1리를 찾았다. 시내에서 승용차로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이 당선자의 사촌 형수 유순옥(76)씨는 “우리 시삼촌(이 당선자의 아버지)은 참 훌륭한 분이었슴니더”라고 말했다. “내가 시집 와 포항 시내 사는 시삼촌 댁에 인사를 갔어예. 부부가 고물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웬 거지 아이가 웃통을 벗고 지나갑디더. 시삼촌이 이리 와보니라 하고 부르더니 헌 옷을 골라 입히고 잔돈푼까지 쥐어주데요. 그리고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어도 입은 거지는 얻어먹는다더라’면서 그냥 보내요. 지켜보던 시숙모가 ‘저분은 자기 대에 복을 못 받으면 자식 대에서라도 꼭 받을끼다’라고 합디다.”

이명박 당선자의 고교 생활기록부. 국어·수학은 3년 내내 ‘수’였지만 일부 상업 과목은 ‘미’를 받기도 했다.
당시 이 당선자 가족은 남을 도울 형편이 아니었다. 유씨는 “집에 가보니 판때기를 얼기설기 얹은 게 꼭 개집 같더라”며 “점심 때 밥을 차리려고 물어보니 ‘우리는 귀국 후 점심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좀 더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중학 시절 친구들은 “명박이네는 집에 부엌이 없어 툇마루에 구멍을 뚫고 거기 화로를 넣어 밥을 해먹었다”고 전했다.

이 당선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버지는 성실하고 정직한 분이었지만 돈 버는 재주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기 싫어하던 당찬 소년과 가난하면서도 한없이 사람 좋은 아버지의 관계가 어땠을지 짐작할 만하다.

소년 이명박을 괴롭힌 것은 가난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일하던 목장이 동지상고 재단 이사장 소유여서 그의 두 형은 이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고교에 진학할 때는 사정이 달랐다. 어머니는 “우리 형편에 너를 고등학교 못 보낸다는 건 네가 더 잘 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수재 소리를 듣던 둘째 형 상득(72ㆍ현 국회부의장)을 위해선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고 있었다.

친척들은 “이 당선자 가족이 단칸방에서 발조차 제대로 못 뻗고 잘 때도 이 부의장이 밤에 공부할 자리는 꼭 남겨뒀다”고 전했다. 이 당선자는 나중에 “형들 교복과 옷을 물려 입은 것도 억울한데 이젠 형들 때문에 고등학교도 못 가는구나… 가난과 형들이 원망스러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장학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간신히 형들이 다닌 고교의 야간부에 들어갔다. 형들에 비해 얼굴이 못났다고 생각했던 것도 큰 콤플렉스였다.

이 당선자가 가난과 형에 대한 콤플렉스라는 두 개의 산을 넘을 수 있게 해준 힘은 뭐였을까. 포항중·동지상고 동창인 김홍대(66)씨는 “아마 자존심이었을 것”이라며 “명박이는 행상하고 리어카 끈다는 티를 전혀 안 내 솔직히 잘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 동지상고 야간부는 2∼3년씩 진학이 늦은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이 당선자처럼 중학을 마치고 바로 진학한 경우가 외려 드물었다. 그러나 이명박은 무슨 일이든 누구에게든 지려 들지 않았다. 고3 때 벌어진 시험 거부 사건 때도 그랬다. 고교 동기 김칠복(68)씨의 말이다.

“학교 배구부가 대구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했어요. 나도 선수였는데 경기 뒤 학교에 와 보니 시험을 친다더라고. 우리는 공부 하나도 못 해 시험 못 치겠으니 다들 답안지에 이름만 써서 내자고 내가 ‘백지 동맹’을 주동했지. 선생님들이 발칵 뒤집어졌어요. 걱정을 하고 있는데 선수도 아니었던 명박이가 오더니 ‘이름 다 썼는데 (주동한 너는) 왜 안 나가느냐’고 하면서 교실 밖으로 뚜벅뚜벅 나가더라고. 덩치도 작고 공부만 하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내가 좀 창피했어요.”

이 당선자가 중학 시절 살았던 포항 북구 덕산동 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일제 시대 절터였던 이곳에는 극빈층 15세대가 모여 살았다. 금방이라도 지붕이 내려앉을 것 같은 이 집엔 지금도 형편이 어려운 10여 세대가 옹기종기 살고 있다.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최상택(51)씨는 “집은 아예 값을 매길 것도 없고 땅값도 평당 100만원이나 할까 말까”라고 말했다.

이 당선자가 고교 1학년 때 뻥튀기를 팔던 북구 학산동 포항여고 앞길은 말끔하게 포장돼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교 친구 강원구(67)씨는 “당시 장사하던 모습을 종종 봤는데 명박이가 대통령이 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시절 뻥튀기 기계가 있던 자리의 맞은편 길에는 이번 대선 기간 내내 후보들의 포스터가 나붙었다. 공교롭게도 포스터 속 이명박의 시선은 자신이 장사하던 바로 그 위치를 향하고 있었다.

이 당선자는 59년 12월 고교 졸업을 앞두고 포항을 떠났다. 그는 나중에 “77년 현대건설 사장 발령을 받은 뒤 처음으로 다시 고향 땅을 밟았다”고 밝혔다. 정신 없이 바쁘기도 했겠지만 그곳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가난과 콤플렉스가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그가 서울에 와 보니 먼저 상경한 부모님은 이태원 판자촌에 단칸방을 얻어 놓고 채소 노점을 하고 있었다. 60년 봄이 되자 중·고교 시절 그와 가장 친했던 포항 친구 김창대(65)씨가 상경했다. 이 당선자 대신 받은 고교 수석졸업 상장과 부상인 탁상시계를 들고 왔다. 김씨의 말이다.

“명박이가 갈 데가 없으니 내 자취방에 와서 같이 공부했는데 전날 아무리 심한 막노동을 했어도 오전 4시면 일어나 공부하더라고. 고려대 가서도 명박이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리포트 제출 때면 친구들이 그 사람 걸 베꼈다고 그래요.”

대학 친구가 기억하는 이명박은 어떤 사람일까.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인 엄종일(65) 전 건영 사장은 “워낙 조용한 사람이어서 등록금 낼 때가 돼서야 명박이가 어렵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은 시골에서 소 판 돈을 올려 보내니 뭉칫돈으로 내는데 이 친구는 여기저기서 모아온 듯한 꼬깃꼬깃한 돈을 냈다”는 것이다.

청년 이명박의 삶이 달라진 것은 대학 3학년 때 상대 학생회장에 출마하면서다. 본인은 나중에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성격을 바꾸고 싶어서 출마했다”고 말했다. 64년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를 주동하고 이 일로 반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면서 그는 비로소 자신을 짓누르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초고속 승진을 계속하면서 가난도 사라져갔다.

이 당선자는 올해 5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강한 사람 만나면 무한히 강한 힘을 발휘하는데, 되게 약한 사람 만나면 흐물흐물해진다”고 말했다. 사실일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경험한 가난과 콤플렉스 때문일까. 김창대씨는 “이 당선자의 현대건설 입사 초기에 친구 세 명이 대구에서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다”며 “당시 술집 여종업원이 ‘집안 형편 때문에 여기서 일한다’고 하자 이 당선자가 주동이 돼 돈을 거둬 빼줬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 시절 이 당선자가 기르던 잡종개를 잃어버리고 어찌나 슬퍼하던지 놀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초·중학교 동기이자 고려대 동문인 방무성(66)씨도 “극장 간판 그리던 고향 친구가 80년대에 무릎을 크게 다친 일이 있다”며 “당시 명박이가 수술비 몇 백만원을 모두 부담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방씨는 자신이 박정희 정권 시절인 71년 야당인 신민당 소속으로 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했을 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서슬 퍼렇던 시절에 야당으로 나왔으니…. 다들 겁먹고 외면하는데 명박이가 자기 서너 달치 월급을 털어 선거 자금을 보태줍디다.”

이 당선자는 75년 현대건설 부사장이 된 날 김창대씨를 찾아가 술을 마시며 “성인이 된 뒤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포항의 어린 시절과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김씨는 기자에게 “맨주먹으로 그 자리에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포항 촌사람의 자존심이 마침내 가난과 콤플렉스에 한판승을 거둔 순간이었다.

政·財·法·醫·學… 친인척 곳곳에 포진

이명박 당선자의 가계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친인척은 정·재계를 비롯해 법조·의료·학계 등 사회 각 분야에 두루 포진해 있다. 특히 재계에선 효성·LG 그룹과 혼맥이 닿아 있다.

이 당선자는 이충우(1981년 작고)씨와 채태원(64년 작고)씨의 4남3녀 중 3남이다. 그러나 6·25 당시 바로 위의 누나 귀애씨와 남동생 상필씨가 사망해 현재는 3남2녀만 남아 있다.

형제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역시 둘째 형인 이상득(72) 국회 부의장이다. 포항 동지상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하고 다시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77년부터 88년까지 ㈜코오롱과 코오롱상사 사장을 지냈다. 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지금까지 내리 5선을 기록하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원내총무·사무총장·최고위원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큰형 상은(74)씨는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다스의 대주주다. 다스는 현대자동차의 부품 납품 업체다. 상은씨는 이 당선자의 막내 처남인 김재정(58)씨와 다스를 공동 소유하고 있다. 이 당선자의 중·고교 친구인 김창대(65)씨도 다스의 주주다.

이 당선자는 부인 김윤옥(60) 여사와 70년 12월 19일 결혼했다. 김씨의 큰오빠 재응(작고)씨가 이 당선자의 동지상고 시절 교사와 고교 동창이어서 인연이 됐다. 김 여사는 대구 수창초등학교와 대구여중ㆍ고를 나와 이화여대 보건교육과를 졸업했다.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일 때는 걸스카우트서울연맹 명예연맹장,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 명예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김 여사는 김시구(83년 작고)씨와 최덕례(79년 작고)씨의 3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 두 명은 작고했다.

김 여사의 아버지 김시구씨는 전매청 공무원 출신으로 고려화성이라는 회사를 경영했다.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한때 고교 교사 생활을 했던 이 당선자의 친구 김창대씨도 이 회사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이 당선자는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큰딸 주연(36)씨와 둘째 딸 승연(34)씨는 미국 줄리아드 음대를 나왔다. 막내딸 수연(32)씨는 숙명여고를 나와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했다. 모두 전업주부다. 아들 시형(29)씨는 서울고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를 다닌 뒤 한때 국내의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했다.

이 당선자의 세 사위는 각각 법조·의료·재계 출신이다. 맏사위 이상주(37)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3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부산·수원지검 검사를 지내고 퇴직했다. 현재는 삼성화재 법무담당 상무다. 법조계 내에서 이 상무는 성격이 원만한 데다 연수원 성적도 좋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사시 동기 중에 유승엽·김윤욱·양정일·정상식씨 등이 삼성·SK·한화 등의 기업에 상무급으로 진출해 있다.

둘째 사위 최의근(34)씨는 서울대병원 내과 의사다. 아버지 최윤식(63)씨도 서울대 의대 교수다. 심장ㆍ부정맥 분야가 최 교수의 전공이다. 대한순환기학회 이사장과 한국성인병예방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셋째 사위 조현범(35)씨는 한국타이어 부사장을 맡고 있다. 조양래(70) 한국타이어 회장이 아버지다. 형 현식(37)씨도 같은 회사 부사장이다. 조현범씨의 큰아버지는 조석래(72) 효성그룹 회장이다. 전경련 회장도 맡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와 전경련 회장이 사돈 관계가 된 셈이다.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인 현준(39)·현문(38)·현상(36)씨는 각각 효성 사장·부사장·전무를 맡고 있다. 효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선대인 고(故) 조홍제 회장 때부터 ‘정치를 멀리 하라’는 유지가 있었다”며 “앞으로도 정치권과 얽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자의 둘째 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은 부인 최신자(66)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뒀다. 대구 출신인 최씨는 경북여고와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이 부의장의 장남 지형(41)씨는 골드만삭스자산운용 대표를 맡고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인 그는 대학 시절 잠시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진로를 경제 분야로 바꿨다고 한다.

이후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뒤에는 삼성전자 전략기획실을 거쳐 자산운용사인 맥쿼리IMM자산운용 사장을 지냈다. 골드만삭스가 이 회사를 인수한 뒤에는 골드만삭스자산운용 대표로 직함이 바뀌었다. 부인은 서울예고와 이화여대 미대를 나온 조재희(34)씨다.

이 부의장의 큰딸 성은(38)씨는 영동여고와 서울대 심리학과를 나와 구본천(43) LG벤처투자 사장과 결혼했다. 구자두(75) LG벤처투자 회장이 그의 아버지다. 구 회장은 구자경(82) LG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이다. 따라서 구본천 사장은 구본무(62) LG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이 된다.

이 부의장의 둘째 딸 지은(37)씨는 서울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나왔다. 남편은 오정석(37)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다. 현대고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나와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참여정부에서 과학기술부총리를 지낸 오명(67) 건국대 총장이 그의 아버지다.

이 당선자의 친인척 관리 스타일은 어떨까. 고향인 포항에 살고 있는 친척들은 “현대그룹에 있을 때부터 전혀 인사 청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의 7촌 조카인 이용주(67)씨는 “지금은 돌아가신 친척 어른 한 분이 명박이 아재가 현대에 있을 때 서울 자택으로 취직 자리를 부탁하러 찾아간 적이 있다”며 “어른의 얼굴을 보면 안 들어주기 곤란하니까 아예 밤 늦게 들어와 새벽같이 나가 버렸다고 한다”고 말했다.

역시 7촌뻘인 이수형(52ㆍ합기도장 관장)씨도 “30년 전 군 복무를 마치고 취직을 부탁하러 찾아갔더니 ‘젊은 사람이 살아가는 자세가 안 돼 있다. 건물 수위라도 하려면 원서를 내고 아니면 돌아가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엔 서운했지만 그게 자극이 돼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다”며 “임기 5년 동안 친인척으로 인한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직원들 조금 느슨한 면 보이면'뭐 하러 출근했어?' 다그쳐

현대건설 CEO 시절의 이명박

현대 시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통했다. 1980년대 초반 공사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이 당선자(큰 사진). 오른쪽 사진은 81년 현대건설 신입사원 하계수련회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왼쪽)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모습.
현대 시절 이명박은 ‘오로지 일’로만 세상을 봤다. 그래서였는지 윗사람들에게 이명박은 다소 부담스러운 부하 직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딱 한 사람,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만은 예외였다.

현대건설 상무로 있던 1970년대 초반. 서산 간척사업을 할 때 일이다. 인허가 문제가 잘 안 풀리는 바람에 정주영 명예회장은 임원회의 때마다 짜증을 냈다. 연일 사장·부사장에게 빨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닦달했지만 “잘 안 된다”는 소리만 나왔다. 그런데 회의장 말석에 앉아 있던 이명박 상무가 갑자기 “제가 해보겠습니다”라며 나섰다. 정 명예회장은 “옳거니, 한번 가 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불과 일주일 뒤 이 상무는 “다 해결됐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이미 사전에 해결 방법을 준비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건설의 한 전직 임원은 “당시 사장과 부사장 등 고위 임원들의 당황하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며 “윗사람들에게는 그가 매우 ‘껄끄러운 부하’였지만 정 회장에게만은 예외였다”고 회고했다. 봉급쟁이 시절부터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유형이었다는 지적이다.

윗사람들이 싫은 소리라도 할라치면 그는 ‘원칙’과 ‘일’을 내세워 따졌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종종 상사들의 견제와 질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의 ‘특별한 총애’는 이런 난관을 극복하는 바탕이 됐다. 임형택(서울경제포럼 고문) 전 한라건설 부사장은 “현대에 있는 동안 정 명예회장이 이명박 사장을 야단치는 것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대 사람들은 “CEO 시절 이명박 당선자는 체육행사를 할 때도 악바리 근성이 대단했다”고 기억한다. 왼쪽 큰 사진은 80년대 초반 그룹 체육대회에서 직원들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이 당선자.
“명예회장의 지시는 현대에서 곧 법이다. 하지만 이명박 사장은 이런 정 명예회장을 상대로 반대 의견을 종종 냈다. 워낙 설득을 잘했고 명예회장도 이 사장의 얘기는 들어줬다.”

임 전 부사장은 당시 정 명예회장의 공사현장 시찰을 자주 수행했다. 불같은 성격의 ‘왕(王)회장’은 현장에 자재가 방치돼 있거나 공사 진척이 더디면 “당장 소장을 잘라라”고 소리쳤다. 한번은 임 전 부사장이 이런 회장의 지시를 전달하자 이 사장의 대답은 “노”였다고 한다. 그 뒤 이 사장이 정 명예회장을 찾아가 결국 해고 지시를 거두게 했다. “다른 기회를 주면 잘할 사람”이라며 설득했던 것이다. 어떨 땐 해당자를 6개월 정도 휴직하게 하거나 연수를 보냈다 슬그머니 복귀시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王회장과 비슷하면서 다른 스타일
물론 아랫사람들을 쉴 새 없이 몰아가는 면에서 그는 정 명예회장의 스타일을 빼닮았다. 이명박은 사장 시절 임직원들에게 “모두 사장·회장이 돼서 뛰란 말이야”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 부하들을 독려했고, 조금이라도 느슨한 면이 보이면 “산보 다녀왔어? 빈손으로 왔으면 뭐하러 출근했어”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하지만 대조적인 면도 있었다. 정 명예회장이 과감하고 즉각 즉각 판단하는 스타일이라면 사장 시절의 이명박은 상대적으로 고심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이명박 사장의 비서를 6년간 했던 노치용 현대증권 부사장은 “결재 받으러 가면 ‘기다리라’고 하고 몇 시간씩 고심하곤 했다. 그 시간이 길어져 아랫사람들이 불평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파격 인사’로 성공 가도를 달렸던 이명박 역시 파격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의 입사 동기인 박재면 전 현대건설 회장은 “사장 취임 초기에는 누군가 맘에 들면 이런 저런 단계를 ‘생략’하고 과감히 일을 맡기는 타입이었다”고 말했다. 조선호텔을 지을 때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난 자재담당 직원을 발탁해 자신의 밑에 두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마닐라 공사 당시 수금 문제가 지지부진하자 이명박 사장은 외부 전문가를 파격적으로 영입했다. 그런데 어렵게 데려온 이 인물은 건설회사 경력이 없다 보니 업무가 제대로 진전되지 않았다. 게다가 기껏 모셔다 놨더니 다른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명박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대로했다고 한다.

박재면 전 회장은 “이후 그의 인사 스타일이 신중해졌다. 무엇보다 조직 충성도를 십분 고려하는 듯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박 전 회장의 말대로 “같은 실수를 절대로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어서일까. 실제로 그 사건 이후 이명박의 인사 스타일이 실력과 능력 위주에서 충성도를 따지는 쪽으로 바뀐 듯하다.

이명박은 이번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캠프에서 한번 믿은 사람은 거의 바꾸지 않았다. 파격 인사도 거의 없었다. 78년부터 6년간 이명박 사장 비서를 지낸 노치용 현대증권 부사장도 비슷한 경험을 전한다. 당시 노치용이 실제로 비서실 근무를 하고 있는데도 이 사장은 한 달가량 정식 발령을 내지 않았다. 그냥 전임자의 보조로 일하는 수준이었다.

“이명박 사장은 가끔 내가 일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그 기간 중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유심히 관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보면 여비서 한 명을 뽑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냥 두고 얼마 동안 관찰했던 것 같다.”

인사에서도 매정하다 소리를 더 많이 들어야 했다. 고려대 출신이 유난히 많아 현대건설은 사내에서 ‘고대건설’이라고 불렸다. 인사철만 되면 청탁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학연·지연을 거의 따지지 않았다. 현대건설의 한 전직 임원은 “최소한 자신의 모교인 고려대 출신을 티 나게 챙기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정세영 회장이 동문인 고려대 출신을 상당히 챙겨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자기 사람이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들어야 했다.

박정희 “걔 인간 좀 만들어 주쇼”
77년 1월 서른여섯의 나이에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이명박 사장은 얼마 뒤 포항중·동지상고 동창인 김창대를 찾았다. 단둘이 술잔을 들이켜다 이명박이 별안간 굵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오랜 지기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입사 12년 만에 최고 자리에 올랐다. 승승장구라고 표현할 만큼 쉽게 오른 자리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처가 없을 리 없다. 정 명예회장의 특별한 총애를 받다 보니 주변의 온갖 질시와 눈총을 받았다. 이명박은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자랐다.”

‘냉정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쉼 없이 달려온 12년 속에는 그처럼 남모를 눈물이 스며 있었다. 사실 첫발을 떼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65년 여름 직장을 구하던 이명박의 눈길이 현대건설 신입사원 모집 공고에서 멈췄다. 현대건설의 첫 번째 해외사업이던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현장 파견사원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의 회고다.

“그때만 해도 현대는 임직원 380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였다. 나는 현대를 잘 몰랐다. 그러나 대한민국 처음으로 해외파견 사원을 모집한다고 하니까 매력을 느꼈다.”
당시 스무 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1000여 명의 지원자가 구름 떼처럼 몰렸다. 1, 2차 전형을 끝내고 3차 면접 때 이명박은 신원 조회에 걸렸다. 학생운동 전력이 문제였다. 이때 정 명예회장은 “해외파견 중 문제가 생기면 회사가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신원보증 각서를 써야 했다. 정 명예회장은 ‘스물넷의 이명박’을 이렇게 기억했다.

“얼굴이 새카만 녀석이 눈은 살아 있었다. 한쪽 눈이 찌그러져 있는데 그때는 똘망똘망하게 보이더군. 그래서 합격시켰다. 나중에 청와대에 들어갔더니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명박이라고 있지요. 아주 고약한 녀석인데 정치권에 기웃거릴 줄 알았는데 현대로 갔더군. 인간 좀 만들어 보세요’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 명예회장에게 골칫덩이 운동권 출신을 ‘인간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이명박은 이를 넘어 ‘샐러리맨 신화’를 만들었다. 입사 5년 만에 이사가 됐고, 12년 만에 사장이 됐다. 나중엔 무려 15년 동안 국내 최대 건설사의 CEO를 지낸다. “태국 건설 현장에서 폭도들로부터 금고를 지켰다” “신군부의 산업 합리화 정책에 맞서 현대자동차를 지켰다”는 등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를 지켜본 이들은 “이명박 신화는 철저한 준비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66년 태국 도로공사 현장에서 공구장을 지낼 때 신입사원 이명박을 처음 만났다는 임형택 전 부사장의 회고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명박은 경리부 말단사원임에도 거의 매일 야근을 자처하던 특이한 직원이었다”고 기억했다.

“자정에 현장 직원들과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당시 이명박 사원은 경리부에서 혼자 불을 켜놓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무엇하느냐고 물으면 ‘잘 모르는 현장 서류들이 있어 공부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런 밤샘 근무가 곧 빛을 발했다. 정 명예회장이 현장 시찰을 나왔을 때 일이다. 공사가 계속 적자가 난다고 화를 내면서 그는 “공구별 적자 현황을 면밀히 분석하라”고 지시했다. 경리부에 난리가 났다. 이때 ‘말단사원 이명박’이 나서 일목요연하게 상황을 보고했다. 정 명예회장이 이명박이란 존재를 처음 눈여겨보게 된 사건이다.

68년 귀국해 중기사업소에 근무하던 이명박은 1년간 세 번 승진하는 진기록을 세운다. 69년 7월 차장으로 승진하더니 그해 말 부장에 오른 것. 이듬해 5월엔 공무담당 이사가 된다. 이때마다 정 명예회장은 “내가 승진시킨 게 아니야. 자네 스스로 승진한 거야”라며 이명박을 치켜세웠다. 정 명예회장은 그룹 창립 35주년 사사에서 이명박을 벼락 출세시킨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중장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효로·서빙고·관악으로 옮겨 다니면서 중기공장을 운영했는데 이명박 사장이 이를 맡아 건설장비에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사실 노동자 가운데 가장 다루기 어려운 층이 중기 운전기사다. 이 사장은 그쪽을 완전히 파악해 휘어잡았다.”

성실함도 남달랐지만 정 명예회장은 그의 판단력을 높이 샀다는 전언이다. 노치용 부사장은 “이 당선자의 순간 판단력이 남달랐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꼼꼼히 메모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구두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치밀하고 세심함이 있었다. 건설업은 각종 사고 처리부터 입찰 금액을 써내는 일까지 순간순간 판단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면에서 놀라움을 많이 보여 줬다.”

그렇다 보니 일부에선 독선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노 부사장은 이를 업종의 특징으로 설명한다. 그는 “결정을 빨리 하고 곧바로 실행에 들어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건설회사”라며 “이 당선자는 욕을 얻어먹는다고 멈칫하는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대표이사를 하면서 인천제철·대한알루미늄 등 현대가 새롭게 인수한 회사나 한국도시개발(현 현대산업개발)·한무쇼핑(현 현대백화점) 등 신규 설립한 회사의 대표이사를 겸임하도록 한 것도 그의 판단력 때문이었다. 전성기 시절 이명박은 현대 8개 계열사의 CEO를 맡았다.

한편에선 그가 정주영호(號)의 충실한 항해사였지 ‘선장’은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 명예회장이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해 오면 이 사장이 살림은 잘했어도 직접 현장을 누빈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돌파력·추진력·아이디어는 좋은데 협상과 조율 능력에서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김정국 전 현대건설 사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이런 시각을 부정했다. 그는 “수주 실적이 없으면 사장 자리를 내놔야 하는 것이 건설회사”라며 “특히 페낭대교는 이명박 당선자의 단독 작품”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일본을 포함해 41개 사가 수주 경쟁을 벌였다. 페낭대교는 말레이시아 본토와 페낭섬을 잇는 8㎞짜리 동양 최대 다리 공사였다. 공사금액만 3억5000만 달러였다. 일본은 차관을 대주겠다고 했고 프랑스는 현대보다 입찰가가 낮았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마하티르 총리를 설득해 모두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페낭 프로젝트를 따냈다.”

가장 자주 쓰던 말 “내사둬!”
상당수 현대맨의 말대로 이명박은 잔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사소한 일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명절에는 청소부·수위 등 외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이름으로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자신의 열정적인 업무 스타일 때문에 아랫사람이 고생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의 운전기사는 특히 고생이 심했다. 종일 자동차로 움직이다 새벽 1~2시에 퇴근하는 것이 예사. 그런 다음 오전 6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더구나 그는 술을 좋아해 가끔 지각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이명박은 전혀 불평 없이 직접 차를 몰고 출근했다. 총무부장이 운전기사를 교체하겠다고 했지만 이명박은 “내사둬!”라는 한마디뿐이었다. 처음에 아랫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 뜻의 “내사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할 때는 엄격하지만 정에 약하고 마음이 여리다는 얘기다. 다만 그는 요령 피우는 사람을 싫어했다. 이명박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었다. 진정한 사업가로서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정 명예회장이 인수합병으로 성장한 김 전 회장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한 것과 비슷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현대맨이라면 이명박에 대해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와 시기를 한꺼번에 받는 이유에서였을까. 이명박은 누구보다 몸가짐이 남달랐다. 현대건설에서 같이 근무했던 김영일 에머슨퍼시픽 부회장은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피곤한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남 보는 데선 하품도 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업무상 술자리가 있더라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김정국 전 사장은 “업무상 외국인 손님 접대가 있으면 당시엔 삼청각 같은 한식집에서 식사를 했다”면서 “음식 시중을 드는 여종업원을 마치 여직원 대하듯 했다”고 말했다. 해외 출장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일이 끝나면 부랴부랴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관광도, 쇼핑도 없었다. 호텔에선 저녁 식사를 한 다음 곧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 일쑤였다.

현대건설 전직 사장의 말이다. “오너들은 전문경영인에 대해 반드시 이중·삼중으로 검증을 한다. 정씨 집안은 귀가 얇다. 한 방 쏘면 즉각 반응을 한다. 그런데 이 당선자는 10년 넘게 승승장구했다. 그만한 배경은 철저한 자기 관리에서 찾을 수 있다.”
연말 휴가를 빼고는 여름에 있는 신입사원 수련대회가 휴식의 전부. 식목일이나 국군의 날 같은 휴일에도 회사에 나왔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유로 일요일에 쉬는 정도였다. 일만 하다 보니 이명박은 ‘재미없는 사람’으로 통했다. 노래도 잘 부르지 않아 회사 임직원들은 “사내 행사 때 어쩌다 부르면 지독히 못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런데 80년께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현대 임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이명박 사장이 배우겠다고 해서 비서가 테이프를 구해줬다. 그래서 출퇴근할 때 이 노래를 유일하게 배웠다고 한다. 이후 기분 좋을 때면 이 노래를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렇게 재미없게 살아온 이명박 사장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 있었으니 바로 테니스였다. 그는 수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 서울 도곡동에 있는 현대체육관에서 직장 동료들과 테니스를 즐겼다. 92년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도곡동 체육관은 그의 일급 아지트였다. 그와 같은 테니스 멤버인 김정국 전 사장은 “아마추어치고는 수준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당선자와 현대는 껄끄러운 이별을 해야 했다. 노태우 정권 말기 재벌 정책에 불만을 품은 정 명예회장은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후보에게 맞섰다. 이때가 92년 1월. 비슷한 시기 이명박은 현대건설을 떠난다. “같이 정치를 하자”는 정 명예회장의 제언에 으레 ‘예스’를 할 줄 알았는데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 분위기가 냉랭했다.

누구보다 화려하게 현대맨으로 27년을 지냈지만 그는 변변한 퇴임식도 없이 현대를 떠나야 했다. 민자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진출하면서는 ‘평생의 후원자’였던 정 명예회장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후 97년 발행된 현대그룹 50년 사사에서는 ‘이명박’이란 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측근·원로·전문가가 함께 일군 승리

이명박 시대 파워 엘리트

뉴시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돼준 사람은 오랜 측근들과 ‘대선 공신’들이다.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최측근들은 이 당선자와의 인연이 길고 깊다. 운명 공동체처럼 묶여 이 당선자가 가장 편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상대다.

박희태 의원 등 대선 공신들은 이 당선자와 동지적 관계를 맺은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중책을 맡으며 핵심 실세로 떠올랐다.
강재섭 대표 같은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과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가들이 선대위를 이끌었다. 자문 그룹도 탄탄해 학계는 물론 정·관·재계 출신 인사들이 정책과 전략을 조언했다.

당내 기반이 취약하던 이 당선자가 한나라당 경선을 돌파하는 데는 열성적으로 뛰어다닌 초선 의원들의 기여가 컸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당선자와 호흡을 맞춘 베테랑 참모들과 전투를 앞두고 스카우트된 선거 전략가들은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지지율 고공 비행’을 이어갔다.

중앙SUNDAY는 창간호인 3월 18일자와 한나라당 경선 직후 발행된 8월 26일자 스페셜 리포트 등을 통해 이 당선자의 ‘실세 측근’과 전략가의 면면을 소개했다. 이들만큼 바깥에 노출되진 않았지만 이 당선자의 서울시장 시절부터 대선 밑그림을 함께 그려온 ‘준비된 참모’들의 공을 간과할 수 없다.

이춘식 특보부단장은 이 당선자가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등원한 1992년 처음 안면을 텄다. 당시 이 부단장은 민자당 조직국장이었다. 알고 보니 이 당선자는 포항중 8년 선배였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를 도우며 한 배에 올랐다. 이 당선자는 이 부단장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기용했다. 폭 넓은 당내 인맥을 활용해 경선 때 대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장석효 한반도대운하특위 위원장은 기술고시 출신 공무원으로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6년 이 당선자와 함께 서울시에서 나와 곧장 운하 연구를 시작했다. 그 즈음 초기 대장암이 발견돼 수술을 받았는데도 병실에 회의실을 만들고 운하를 연구했을 정도다. 장 위원장은 “운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상태”라고 귀띔한다.

경기도 행정부지사 출신인 백성운 상황분석실장은 전국 시ㆍ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이던 2005년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당선자를 알게 됐다. 안국포럼에서 이 당선자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경선 캠프에선 종합행정실장을 맡았다. 대학 3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해 청와대 행정관, 경기도 고양시장 등을 지냈다.

박영준 네트워크팀장은 대우그룹에 다니다 94년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보좌진으로 정치권에 들어왔다. 시장 선거 때 이 당선자를 도왔고 이후 서울시로 들어갔다. 이번 선거에선 이 당선자의 팬클럽을 찾아 전국을 훑으며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을 했다. 이걸 위해 운전한 주행거리가 19만6000㎞. 광주만 41번을 찾아갔다.

조해진 공보특보는 2005년 이 당선자의 요청으로 서울시에 합류한 이후 쭉 언론을 담당했다. 92년 박찬종 전 의원의 보좌역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그는 박 전 의원의 97년 신한국당 경선 패배, 2002년 이회창 후보 패배의 좌절을 겪었으나 기어이 대선 승리의 감격을 맛봤다. 경선 초기 공보를 도맡으면서 하루 300∼400통의 전화를 받아 이명(耳鳴) 증세에 시달렸다.

강승규 커뮤니케이션팀장은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이 당선자의 서울시장 시절 첫 공보관을 지냈다. ‘하이 서울’이라는 서울시 브랜드를 시민 공모를 통해 만든 게 바로 그다. 경선 캠프에서 미디어 홍보단장을 맡았고 대선에선 정책 간담회인 ‘타운 미팅’을 이끄는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현대 근무 경력이 있는 권택기 스케줄팀장은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 기획실장 출신이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미래연대가 이 당선자 캠프에 파견한 전략가다. 이번 경선에서 그는 캠프 기획단장으로 뛰며 전투를 이끌었고 본선에서는 ‘움직이는 전략’인 일정을 담당했다.

YTN 기자 출신인 김영우 정책상황실 부실장은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인 2003년 이 당선자의 외국 언론 인터뷰를 주선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이 당선자가 설립한 동아시아연구원(GSI의 전신)에 선임연구원으로 특채된(2004년) 이후 400여 명의 전문가ㆍ교수를 연결하며 이 당선자의 정책 개발과 학습·토론을 지원하는 등 당선에 큰 기여를 했다.

이명박 시대 파워 엘리트

1.이상득 (72·경북 포항남-울릉)│경북 포항│포항 동지상고│서울대 경제학│국회 부의장│당선자 친형

2.최시중 (70)경북 포항│대륜고│서울대 정치학│한국갤럽조사연구소 소장│형 이상득 의원 친구

3.이재오 (62·서울 은평을)│경북 영양│영양고│중앙대 경제학│한나라당 최고위원│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총괄

4.정두언 (50·서울 서대문 을)│서울│경기고│서울대 무역학│서울시 정무부시장│전략총괄기획팀장

5.강만수(62) 경남 합천│경남고│서울대 법학│재경원 차관│정책조정실장

6.유우익 (57)경북 상주│상주고│서울대 지리학│서울대 교수│이 당선자가 설립한 GSI 원장

7.이춘식 (58) 경북 포항│경북사대부고│연세대 행정학│서울시 정무부시장│특보부단장

8.곽승준 (47) 대구│한성고│고려대 경제학│고려대 교수│정책기획팀장

9.김백준 (67) 전북 익산│남성고│고려대 경제학│삼양종금 사장│개인생활·자금관리

10.박희태 (69·경남 남해-하동)│경남 남해│경남고│서울대 법학│국회 부의장│경선 선대위원장

11.김덕룡 (66·서울 서초 을)│전북 익산│경복고│서울대 사회학(3년 수료)│한나라당 원내대표│한민족네트워크 위원장

12.이방호 (62·경남 사천)│경남 삼천포│부산고│연세대 법학│한나라당 사무총장│선대본부장

13.임태희 (51·경기 성남 분당 을)│경기 성남│경동고│서울대 경영학│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비서실장

14.박형준 (47·부산 수영) │부산│대일고│고려대 사회학│동아대 교수│대변인

15.주호영 (47·대구 수성 을)│경북 울진│능인고│영남대 법학│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수행실장

16.정종복 (57·경북 경주)│경북 경주│부산고│서울대 법학│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종합상황실장

17.나경원 (44·비례대표) │서울│서울여고│서울대 법학│서울행정법원 판사│대변인

18.강재섭 (59·대구 서) │경북 의성│경북고│서울대 법학│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선대위원장

19.안상수 (61·경기 의왕-과천)│ 경남 마산│마산고│서울대 법학│한나라당 원내대표│선대위원장

20.김형오 (60·부산 영도) │부산│경남고│서울대 외교학│한나라당 원내대표│일류국가비전위원장

21.홍준표 (53·서울 동대문 을) │경남 창녕│영남고│고려대 행정학│한나라당 혁신위원회 위원장│클린정치위원장

22.권오을 (50·경북 안동)│경북 안동│경북고│고려대 정치외교│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유세지원단장

23.권철현 (60·부산 사상)│부산│경남고│연세대 정치외교│국회 교육위 위원장│특보단장

24.정의화 (59·부산 중-동)│부산│부산고│부산대 의학과│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직능정책본부장

25.정병국 (49·경기 양평-가평)│경기 양평│서라벌고│성균관대 사회학│한나라당 홍보기획 본부장│미디어홍보단장

26.전재희 (58·경기 광명 을)│경북 영천│대구여고│영남대 행정학│한나라당 정책위의장│선대위 부위원장

27.전여옥 (48·비례대표) │서울│중앙여고│이화여대 사회학│한국방송 도쿄특파원│선대위 부위원장

28.김성이 (61) 서울│경기고│서울대 사회사업학│이화여대 교수│선대위원장

29.박찬모 (72) 서울│경기고│서울대 화학공학│포항공대 총장│선대위원장

30.배은희 (48) 경남 진주│동명여고│서울대 미생물학│㈜리젠 대표이사│선대위원장

31.유종하 (71) 경북 안동│경북고│서울대 정치학│외무부 장관│선대위원장

32.김주훈 (64) 전남 장흥│광주 숭일고│조선대 이학│조선대 총장│선대위원장

33.윤석원 (54) 강원 양양│검정고시│중앙대 농업경제학│중앙대 교수│선대위원장

34.윤진식 (61) 충북 충주│청주고│고려대 경영학│산업자원부 장관│경제살리기 특별 위원회 부위원장

35.황영기 (55) 서울│서울고│서울대 무역학│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경제살리기 특위 부위원장

36.김태현 (57) 서울│경기여고│이화여대 가정학│한국 여성학회 회장│양성평등 본부장

37.이재후 (67) 서울│서울고│서울대 법학│김&장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GSI 이사장

38.김진홍 (66) 경북 청송│대구 영신고│계명대 철학│두레교회 담임목사│종교계 자문

39.송정호 (65) 만주(출생)│남성고│고려대 법학│법무부 장관│대학동기

40.김창대 (65) 경북 포항시│동지상고│한양대 화학공학│홍원기업주식회사 대표이사│고향 친구

41.천신일 (64) 부산│경남고│고려대 정치외교학│세중나모 대표이사 회장│대학친구

42.김승유 (64) 충북 청주│경기고│고려대 경영학│하나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대학친구

43.유인촌 (56)서울│한성고│중앙대 연극영화학│중앙대 교수'야망의세월'서 당선자 배역

44.윤여준 (68) 충남 논산│경기고│단국대 정치학│환경부 장관│전략·정책 자문

45.사공일 (67) 경북 군위│경북고│서울대 상학│재무부 장관│경제정책 자문

46.안병만 (66) 서울│경기고│서울대 행정학│한국외국어대 총장│교수 네트워크

47.민동필 (60) 서울│서울고│서울대 물리학│서울대 교수│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안

48.박범훈 (59) 경기 고양│서울국악예고│중앙대 작곡학│중앙대 총장│문화·예술분야

49.지승림 (58) 경북 봉화│봉화고│영남대 기계공학│삼성구조조정본부 부사장│정책·홍보

50.전택수 (56) 경남 의령│용산고│서울대 사회교육학│한국문화경제학회 회장│문화정책

51.남주홍 (55) 서울│덕수고│건국대 정치외교학│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원장│외교·안보

52.강명헌 (53) 서울│경기고│서울대 경제학│단국대 교수│경제 자문

53.김원용 (53) 부산│경남고│성균관대 신문방송학│이화여대 교수│전략·정책

54.현인택 (53) 제주│제주제일고│고려대 정치학│고려대 교수│외교·안보 정책

55.백용호 (51) 충남 보령│남성고│중앙대 경제학│이화여대 교수│경제 자문

56.추부길 (51) 전남 고흥│광주일고│전남대 심리학│한나라당 중앙홍보위원│전략기획특보

57.박석순 (50) 경북 경산│경북 사대 부고│서울대 분자생물학│이화여대 환경식품공학부 교수│한반도 대운하 자문

58.박미석 (49) 경북 금릉│선일여고│숙명여대 가정관리학│숙명여대 교수│복지 자문

59.김우상 (49) 부산│부산남고│한국외대 독어독문학│연세대 교수│외교·안보

60.남성욱 (48) 서울│영훈고│고려대 경제학│고려대 교수│북한 정책 자문

61.김태효 (40) 서울│마포고│서강대 정치외교학│성균관대 교수│외교·안보

62.강승규 (44) 충남 예산│천안북일고│고려대 정치외교│경향신문 기자│커뮤니케이션팀장

63.권택기 (43) 경북 안동│안동고│서강대 경영학│한나라당 미래연대 사무처장│스케줄팀장

64.김금래 (55) 강원도 강릉│이화여고│이화여대 사회학│한국 여성단체협의회 사무총장│김윤옥 여사 보좌

65.김영우 (41) 경기도 포천│경희고│고려대 정치외교학│YTN 기자│정책연구·토론

66.김윤경 (33) 부산│경기여고│성균관대 신문방송학 │서울시장 비서│비서

67.김희중 (39) 충남 홍성│서울사대부고│서강대 정치외교학│서울시장 의전비서관│의전·스케줄

68.박대원 (60) 경북 포항│포항고│연세대 정치외교│서울시 국제관계자문대사│국제관계

69.박영준 (47) 경북 칠곡│오성고│고려대 법학│서울시장 정무보좌역│팬클럽 관리

70.백성운 (58) 경북 경산│대구상고│고려대 법학│경기도 행정부지사│상황분석실장

71.신재민 (49) 충남 서천│우신고│서울대 정치학│주간조선 편집장│메시지단장

72양휘부 (64) 제주│경남고│고려대 정치외교학│방송위원회 상임위원│방송특보

73.오세경 (47) 경남 사천│동래고│서울대 법학│인천지검 부천지청 부장검사│네거티브 대응

74.윤상진 (37) 충북 단양│청주신흥고│외국어대 러시아어│서울시장 정무비서관│정무 보좌

75.은진수 (46) 부산│부산상고│서울대 경영학│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사│네거티브 대응

76.이진영 (32) 서울│홍대 사대 부고│이화여대 영문학│서울시장 비서│비서

77.이춘호 (60) 충북 청주│청주여고│이화여대 정치외교학│한국방송 이사│여성계 네트워크

78.이화복 (64) 충남 공주│대전고│고려대 사회학│동아일보 과학부장│지지그룹 관리

79.임성빈 (42) 서울│중앙대 사대부고│미 조지타운대 외교학│일본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외교·의전

80.임재현 (38) 서울│제주제일고│서울대 경영학│대우그룹 비서실│수행

81.장석효 (60) 경기 고양│수송전기공업고│서울대 농공학│서울시 행정2부시장│한반도 대운하 특위 위원장

82.전영태 (52) 경북 영천│검정고시│건국대│한나라당 홍보국장│조직상황실 총괄팀장

83.정재용 (32) 경북 포항│포항 동지고│서울시립대│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도시설계연구원│정책·전략 실무

84.정태근 (43) 서울│홍익대 사범대 부속고│연세대 경제학│서울시 정무부시장│수행단장

85.조해진 (44) 경남 밀양│밀양고│서울대 법학│서울시장 정무보좌관│공보특보

86.최유진 (27) 서울│숙명여고│상지대 행정학│서울시장 비서실 근무│비서

87.안택수 (64·대구 북을) │경북 예천│경북고│서울대 정치학│한국일보 기자│대구 선대위원장

88.고흥길 (63·경기 성남 분당 갑) │서울│동성고│서울대 정치학│중앙일보 편집국장│경선 기여

89.안경률 (59·부산 해운대-기장 을) │경남 합천│부산고│서울대 철학│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부산 선대본부장

90.최병국 (65·울산 남 갑)│울산│부산고│서울대 법학│국회 법사위원회 위원장│법률 지원

91.공성진 (54·서울 강남 을)│서울│경기고│연세대 정치외교학│한양대 교수│서울 총괄 선대본부장

92.김기현 (48·울산 남을)│울산│부산동고│서울대 법학│부산지법 울산지원 판사│법률위원장

93.김재경 (46·경남 진주 을)│경남 진주│진주고│경상대 법학│서울지검 검사│경선 지원

94.김희정 (36·부산 연제)│부산│대명여고│연세대 정치외교학│한나라당 원내부대표│2030기획팀장

95.박승환 (50·부산 금정)│부산│동래고│부산대 법학│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경남지부 회장│한반도 대운하 추진

96.박찬숙 (62·비례대표)│경기도 수원│수원여고│숙명여대 국문학│한국방송 아나운서 │문화·예술 정책

97.윤건영 (55·비례대표)│경북 고령│경북고│서울대 기계공학│연세대 교수│공약 개발

98.이군현 (55·비례대표)│경남 통영│대경상고│중앙대 영어교육학│중앙대 교수│경선 기여

99.이성권 (39·부산 부산 진 을)│경남 남해│남해고│부산대 철학│한나라당 청년위원장│경선후보 수행실장

100.이주호 (46·비례대표) │경북 칠곡│청구고│서울대 국제경제학│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교육정책

101.임해규 (47·경기 부천 원미 갑)│경북 김천│양정고│서울대 교육학│한나라당 원내부대표│경선지원

102.진수희 (52·비례대표)│대전│대전여고│연세대 사회학│한나라당 원내 공보부대표│경선캠프 대변인

103.차명진 (48·경기 부천 소사)│서울│용문고│서울대 정치학│한나라당 원내부대표│선거상황실장

104.강현희 (46) 전북 부안│전주성심여고│이화여대│한나라당 여성정책 수석전문위원│김윤옥 여사 보좌

105.구본홍 (59) 대구│경남고│고려대 정치외교학│MBC 보도본부장│방송인 네트워크

106.김대식 (45) 전남 영광│경남고│일본 오타니대학│동서대 교수│지역 포럼 관리

107.김인규 (57) 서울 │경기고│서울대 정치학│한국방송공사 이사│방송전략실장

108.김종완 (57) 서울│보성고│고려대 정치외교│동아일보 편집부국장│언론특보

109.김좌열 (48) 경북 의성│심인고│영남대 식품가공학과│경북일보 편집국장│지방언론 네트워크

110.김해수 (49) 신일고│고려대 행정학│한나라당 부대변인│비서실 부실장

111.김해진 (46) 경남 밀양│브니엘고│부산대│경향신문 정치부장│공보

112.김현일 (54) 충북 음성│청주고│서울대 정치학│중앙일보 정치부장│공보

113.김효재 (55) 충남 보령│휘문고│고려대 사회학│조선일보 기획취재부 부장│언론 네트워크

114.박명환 (38) 경남 합천│영진고│연세대 법학│국민고충처리위원회 심의위원│MB연대 대표

115.박재성 (44) 부산│브니엘고│부산대 철학│부산시의회 의원│상임 정무 특보

116.박정하 (41) 충북 청주│원주 진광고│고려대 행정학│인천시장 비서관│공보, 김윤옥 여사 수행

117.박흥신 (48) 서울│신일고│고려대 사회학│경향신문 부국장│공보단 총괄 팀장

118.배용수 (54) 경남 고성│진주고│연세대 법학│국회도서 관장│공보특보

119.송태영 (46) 충북 보은│충북고│충북대 행정학│한나라당 부대변인 │공보특보

120.이동관 (50) 서울│신일고│서울대 정치학│동아일보 논설위원│공보단장

121.이성준 (62) 서울│서울고│서울대 인류학│관훈클럽총무│언론 본부장

122.이태규 (43) 경기 양평│천안 중앙고│한국 항공대 경영학│항공대 총학생회장│전략기획팀장

123.장수만 (57) 부산│경남고│고려대 경제학│한국국제조세교육센터 소장│정책조정실 부실장

124.진성호 (45)부산│경남고│서울대 경영학│조선일보 기자│뉴미디어팀장

125.한오섭 (41) 서울│영등포고│한신대 철학과│뉴라이트 전국연합 정책실장│공보 상황실 분석 팀장

126.함영준 (51) 서울│휘문고│고려대 노어노문학│조선일보 사회부장│공보

[출처] 이명박 당선자의 뿌리를 찾아서

by 노즈애란 | 2007/12/30 19:26 | 정치,시사 | 트랙백(6)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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